교수님께 자료 보냈어~ 오늘이 D-DAY넹!ㅎㅎ
순정이랑 아침부터 메일주고 받고 난리를 치다가 무사히 교수님께 메일 보냈어~^^
피피티 자료가 블로그에 안올려져서 걱정했는데 A+팀이 고맙게도 덧글 남겨줘서 알았쥐~ㅋㅋ
아~~~~~~~~ 홀가분! 아직 끝은 안났지만서동ㅋㅋ
완전 시간에 쫒겨서 정신 하나도 없었다는...
오늘은 간만에 날씨도 개었네~ 다들 수고하고! 오늘 발표만 끝나면 또 셤기간 돌입이징?
주말동안 열공해서 담주 셤도 다들 잘치길 바래~~^^*
조원들 모두 수고했고 함께한 과제 즐거웠어~~~!!!
by 블루밍걸 | 2006/04/14 11:50 | Blooming Trade 수다방 | 트랙백 | 덧글(4)
Blooming Trade 과제 (N1) -완성본
 

팀명 : Blooming Trade  

조원 : 2003703055 이정옥

        2002733017 심선희

        2003903044 유순정 

        2003533095 최수임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무역과 경제성장과의 관계

   ⅱ) 한국의 무역과 경제성장

       - 한국무역의 시대별 변천사와 특징

       -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무역의 역할

   ⅲ) 중국무역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Ⅲ. 결론 (조원들의 사견모음)



Ⅰ. 서론

 한 나라의 국민경제는 오늘날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다른 나라의 국민경제와 관련을 맺지 않고는 존립할 수 없으며, 특히 무역의 발전 여부가 그 나라 국민경제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즉, 국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수출이 신장되고, 필요한 원자재 등의 수입이 증가되면 이에 따라 국민경제가 성장하게 되기 마련이다. 또한 수출상품의 생산이 증가하면 고용이 증대되며, 비교우위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산업구조도 재정비되게 된다. 따라서 무역은 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촉진시키는 기본적인 전략이 되는 동시에 국민경제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특히 무역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무역의존도가 년 1~20% 안팍인데 비해 우리는 매년 70%전후를 무역에 의존한다. 그것은 GNP규모에 비해 수출규모와 수입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수출규모가 큰 것은 1960년대부터 추진된 장기경제개발계획과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 전략에 의해 수출 공급능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며 수입규모가 큰 것은 부존자원이 빈약할 뿐 아니라 경제개발과 국민경제 운용에 필요한 자본재, 원자재, 소비재 등의 대량 수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수출의존도와 수입의존도 모두 높아 무역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의 작년 수출입 통계를 보면 수출은 전년대비 12.0%증가한 2.844억 달러 수입은 16.4% 증가한 2,612억 달러, 무역수지는 62억 달러 감소한 232억 달러 흑자, 교역규모는 5,000억 달러(5,456억불)를 넘어섰다. 일국의 무역의존도가 높을수록 무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 된다. 먼저 수출의 경우 시장규모의 확대에 따른 생산규모의 확대를 도모함으로써 공업화를 추진하는 기본적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수출산업 자체에 있어서의 소득증대효과 및 고용 등의 유발효과는 수출의 국제수지효과와 더불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또한 수출산업의 육성에 따라 수출산업이 다른 산업의 생산과정에서 유발되는 파급효과는 산업정책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수입의 경우에도 수입 자체는 국제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선진자본재와 국산불능원자재의 수입은 국내투자를 증대시켜 경제발전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국내재화와 대체관계에 있는 경쟁수입의 경우에도 유치산업의 보호라는 관점에서 수입이 억제되고 있지만, 이는 국내산업과의 건전한 경쟁을 조장하여 국내산업의 육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관세 수입을 통한 국가 재정의 확보, 해외 신기술의 습득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역은 각종상품의 생산을 위한 주요 원자재 수입이 많고 생산능력의 향상과 기술 향상을 위해 필요한 기계, 기구 등 자본재 수입이 많았다. 즉,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중개무역, 중계무역, 통과 무역 등을 위주로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경제는 수출입에 의해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출중심의 경제성장계획을 꾸준히 이행해온 결과 세계적인 자유무역의 확대와 지속적인 개방화정책으로 한국무역의 세계적 위상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의 경제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한국의 경제는 무역, 특히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경제의 위험성을 반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의 주요 수출 국가들이 경제위축과 선진국의 개방 압력, 통상마찰, 신 보호무역주의, 관료주의의 팽배, 생산비용의 증가, 자금시장의 불안, 경쟁시장의 심화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우리 상품의 경쟁력 또한 선진국의 기술과 개도국의 가격 경쟁력에 뒤져 그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의 경제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보다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원한다면 수출에 있어서 보다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무역과 경제성장과의 관계에 대한 정리와 한국무역의 시대별 변천사와 특징 그리고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무역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고 중국무역이 한국무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ⅰ) 무역과 경제성장과의 관계

무역이 이루어지면 무역 당사자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과 경제 전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그 나라의 경제성장과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무역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아래와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무역은 자본축적에 도움을 준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무역의 이익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실질소득의 증가를 가져오며, 이 실질소득 증가로 저축이 증가하고 이를 통한 자본축적은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한편 자본축적은 국내저축 뿐만 아니라 해외저축으로부터 형성되기도 하는데, 무역은 국내저축을 해외저축으로 전환시키는데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국내자본의 형성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자본재의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소비재 생산을 감소시켜야 되는데, 만일 외국에서 자본재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다면, 국내에서 소비재 생산을 감소시켜 자본재를 더 생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소비재 생산을 증가시켜 소비재를 외국에 수출하고 자본재를 수입하게 되면 국내에서 직접 자본재를 생산하는 것보다 자본축적이 쉽다.

  둘째, 무역은 교역국간의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낸다. 무역을 하기 전에는 외국문물에 접할 기회가 적고 물질적 욕망이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다가, 무역을 함으로써 외국과의 접촉으로부터 욕망이 일깨워짐으로써 그간의 유휴자원이 활용될 수 있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즉, 사회에서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던 잉여생산력을 밖으로 분출시킴으로써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셋째, 무역은 생산요소의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 무역을 통하여 시장이 확대되고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게 되면 생산성이 증가하므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넷째, 무역을 하게 되면 선진국으로부터 발전된 생산방식이나 경영방식을 도입할 수 있고, 기술전파ㆍ정보의 교류 등을 촉진시키고, 국제자본 이동을 유발시키며, 경쟁을 통해 국내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줌으로써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by 블루밍걸 | 2006/04/14 11:01 | Blooming Trade 과제 | 트랙백 | 덧글(0)
Blooming Trade 과제 (N2) -완성본-
 

ⅱ) 한국의 무역과 경제성장

       - 한국무역의 시대별 변천사와 특징

* 1960년대: 수출지향형 공업화와 경공업제품중심 수출기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추진과 더불어 수출주도형 개발정책이 강력히 실시되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정비는 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1962년 1월 ‘수출 및 군납촉진을 위한 임시조치법’, ‘수출 진흥법’, ‘수출장려보조금 교부에 관한 특별조치법’, ‘수출검사법’ 등을 제정, 시행함으로서 수출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1961년 이후 수차례에 걸친 평가절하로 이전까지의 원화의 고평가 상태를 시정, 환율을 실세에 맞게 조정함으로서 수출을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또한 1962년 2월 수출금융규정의 제정으로 수출지원금융제도의 기본골격을 갖추는 한편 동년 4월부터 수출금융의 금리를 일반대출금리보다 낮게 책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자금의 초과수요 금융구조 하에서 가장 실질적인 혜택으로 볼 수 있는 자금가용(Availa Bility)면에서의 우대 등이 제도화되었다. 이밖에 수출 진흥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각별한 관심과 행정당국의 조직적인 수출 진흥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무역입국(貿易立國)의 실현을 위한 국가최고지도자의 각별한 관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서는 1962년 12월부터 실시된 대통령 주재의 ‘월례수출진흥확대회의’를 들 수 있다. 대통령 주재의 이 회의는 국민들에게 수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었으며, 기업인에게는 수출을 하지 않고서는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는 가치관을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이처럼 수출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자 관련부처인 상공부는 매년 수출목표를 설정하고 가능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수출 지원책을 강구하는 한편 일선수출업체를 독려하는 등 수출증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열정이 그 추진과정에서 약간의 부작용을 가져온 면도 없진 않았으나 한국에 있어 대외 지향적 성장과정에 커다란 추진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수출지원제도의 확립과 기업가들의 수출의욕에 힘입어 1962-1969년 중 수출은 연평균 41.5%씩 증가하여 1962년 55백만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액이 1969년에는 623백만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60년대의 수출의 급속한 증가는 섬유, 합판, 가방 등 주로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제품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는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을 바탕으로 하여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에서 비교우의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수출증가는 이들 품목의 국제경쟁력의 제고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의 수출증대는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지원정책에도 기인한 바 크지만 때마침 세계경제가 I.M.F-G.A.T.T체제 하에서 자유무역의 전성기를 맞아 연평균 8%의 무역 신장율을 기록하는 등 호황국면을 맞이하고 있어서 한국의 수출은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었으며, 특히 선진국의 일반특혜관세제도 등 후진국의 수출에 대한 지원 등에도 크게 힘입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1970년대 : 중화학 공업화의 추진(구조조정)

  197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고도 성장정책이나 수출 주도형 개발전략에 기본적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1960년대에 비해 대내외적 무역환경은 크게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의 한국에 있어서 경공업제품의 수출증가를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인들은 결국 풍부한 노동력과 그에 비한 저임금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노동시장에서의 수급관계가 종래의 구매자시장에서 판매자시장으로 역전되었고, 이에 따라 실질임금이 크게 상승하여 노동집약적 산업에 있어서의 비교우위가 크게 약화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석유파동 등 국제적인 자원파동으로 인해 원료 및 중간재의 수입비중이 점차 높아졌고, 국제적인 스테그플레이션, 보호무역주위의 만연 및 후발 개・도・국의 추격 등에 따라 한국의 수출증대 특히 노동집약적 상품을 중심으로 한 수출 진흥 전략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벽에 부딪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경공업은 다른 산업에 연관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부가 가치율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계속적인 발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국의 수출은 시장다변화와 함께 수출상품을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중심으로 그 구조를 고도화해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바 이러한 여건변화에 따라 한국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은 경공업위주의 수출이 후발 개・도・국의 추격에 의하여 그 경쟁력이 위협을 받고, 또한 섬유류 등 노동집약적 제품에 대한 선진국의 수입규제강화로 시장진출이 어려워진 환경 하에서의 새로운 돌파구였다고 볼 수 있다.

중화학공업의 육성노력은 1970년대에 들어서부터 본격화되었으며, 특히 1975년 이후 가속화되었다. 1973년 1월 故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1980년에는 전체수출상품의 50%가 중화학공업제품으로 구성되도록 하자는 이른바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하였다. 이에 따라 나프타 분해, 철강, 금속제품, 기계, 전기전자, 조선, 자동차 등이 중요산업으로 지정됨과 아울러 주로 중화학공업 건설자금의 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투자기금법의 제정’, ‘중화학공업 추진위원회’의 설치 등 각종 시책이 마련되었다. 이 결과 1973-1976년의 기간 중 제조업부문에 대한 총 투자의 71%가 중화학공업 부문에 집중되었으며, 1977-1979년 중에는 79.1%로 더욱 높아졌던 것이다.

70년대 들어 새로 도입된 수출 진흥 제도 중의 하나가 ‘종합무역상사제도(綜合貿易商社制度)’이다. 수출규모가 확대되고 품목이 다양해짐으로서 중소수출기업만으로는 해외시장에서의 마케팅(MARKETING)에 충분히 적응할 수 없게 되자 한국정부는 1975년 4월 종합무역상사제도를 도입하였다. 대기업들은 정부의 육성시책에 맞추어 서로 다투어 종합무역상사가 되기를 바랬고,  특히 종합무역상사로서의 위신을 중시했다. 정부가 종합무역상사 지정요건을 통해 유도하고자 하는 것은 수출기업의 거대화, 취급품목의 다양화, 그리고 시장의 다변화였으며, 이에 맞추어 수출기업들은 해외마케팅조직을 강화하고 보다 많은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70년대 중 한국의 수출은 1971년 10억 달러, 1977년 100억 달러, 1979년에는 15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70년대(1970-1979년)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37.9%에 달하여 1960년대의 증가세가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총 수출액 중에서 한국의 수출이 점하는 비중은 1970년의 0.3%에서 1979년에는 1%까지 높아졌다. 또한 중화학공업의 육성에 따라 1979년의 10대 수출상품으로 전자제품, 철강, 기계류, 선박 및 금속제품 등 중화학공업제품이 대거 부상하여 1960년대의 합판, 가발, 광산물 및 과ㆍ채소류 등이 주종 수출상품이었던 점에 비해 수출구조가 크게 고도화되었으며, 총 수출 중 중화학제품의 수출비중이 1970년의 12.8%에서 1979년에는 38.4%로 급격히 높아졌다.


*1980년대 :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의 모색

60, 70년대를 거쳐 수출주도에 의거 고도성장을 지속하여 오던 한국경제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걸쳐 대내외적인 여건변화에 따라 정책기조를 전환하게 되었다.

  우선 대내적으로는 경제규모가 커지고 경제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지금까지와 같은 정부주도하의 경제운용은 시장기능이 정상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저해함으로서 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또한 국내산업에 대한 과잉보호와 지원으로 기업들이 기술혁신과 생산성향상 노력에 태만함으로서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될 소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소비자의 외제선호경향이 심화되었으며,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증대로 소비자의 욕구도 다양해 졌다.

  대외적으로는 제2차 오일쇼크에 따른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와, 이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의  만연, 후발 개‧도‧국의 추격, 국내시장개방의 압력 등 국제무역환경도 60, 70년대 보다 더욱 악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무역에서의 한국의 지위향상에 따라 국내시장에 대한 개방 압력이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이 밖에도 한국경제가 발전을 지속하여 온 결과 이제부터는 과거와는 달리 국제사회에서 중진무역국으로서의 역할의 수행을 담당해야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80년대 들어 경제정책기조가 안정성장을 기함과 동시에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민간주도형 경제운용 등으로 바뀜에 따라, 무역 전략도 지금까지의 정부주도하의 수출지원‧수입합리화 전략의 궤도를 수정, 수출 못지않게 수입을 중시하는 무역의 확대균형 전략 하에 수출지원의 점진적 축소 및 수입자유화 확대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83년에 들어서부터 수입자유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르러 수입자유화율은 83년 상반기의 76.6%에서 87년에는 91.5%로 높아졌으며 87년 7월에는 93.5%로 높아졌다.

  또한 상품시장 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 및 서비스시장도 1984년 이후 대폭적으로 개방하였으며, 관세인하도 병행하여 추진함으로서 실질적인 개방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198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 수출의 년 평균 증가율은 12.7%로서 60, 70년대의 40%내외에 비하면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었지만, 수출액 규모의 확대 및 세계교역 신장률 둔화 추세와 보호무역주의(保護貿易主義)의 심화 등을 감안해 볼 때, 한국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음은 사실이었다.

  1986년 당시 한국의 무역규모는 663억 달러(수출 347, 수입 316억 달러)에 달해 세계 제10위권의 교역국으로 부상하였다. 이는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2년의 무역규모 4.8억 달러(수출 0.6, 수입 4.2억 달러에 비해 무려 139배(수출 633배, 수입 75배)나 확대된 셈이었다. 또한 양적 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질적 고도화도 가속화되어 60년대 초의 중석, 철광석, 오징어, 쌀 등의 1차 산품 위주의 수출에서 수출액의 95%이상이 공산품이며, 그 중에서도 자동차, VTR, 반도체 등 기술 집약 제품이 주종 수출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자동차는 1983년 캐나다시장에 진출한 이후 3년만인 1986년에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함으로서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여 자동차가 수출주종품목중의 하나로 자리를 굳혔다. 1986년 당시의 자동차 수출실적은 16억 달러에 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인 1987년에는 이의 2배가 넘는 33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밖에도 VTR, TV, 반도체, 전자 렌지, 라디오, 전화기 등의 수출호조로 1987년 말에는 전자제품이 지난 1960년대 중반 이후 20여 년이 넘게 한국의 최대수출품목의 자리를 고수해 왔던 섬유류를 누르고 1위 품목으로 부상되었다. 이는 단순히 섬유류나 전자제품간의 선두다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무역이 질적으로 고도화되었다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었다.

  특히 1986년에는 한국의 무역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흑자를 실현하여 만년 적자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역수지의 흑자전환에 힘입어 경상수지도 46억 달러에 이르는 대폭적인 흑자를 실현함으로서 그동안 늘어만 오던 외채를 축소하는 획기적인 한 해가 되었다.

by 블루밍걸 | 2006/04/14 10:54 | Blooming Trade 과제 | 트랙백 | 덧글(3)
Blooming Trade 과제 (N3) -완성본-

*1990년대 :고비용 저효율의 시대 및 경제자유화 확대기

소위 ‘4고’ 라고 불리는 금리, 임금 ,지가, 물류비 가 1990년대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대두되었다. 타 국가에 비해 모든 면이 비용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효율 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국제경쟁력이 저하되고, 기업들의 수익성이 저하되었다. 또한 1980년대의 무역자유화의 기조위에서 시장개방을 더욱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전체의 자유화와 개방화를 위하여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폭을 대폭 축소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경제에 대한 정부규제의 축소를 목표로 제반기업활동에의 규제감소, 진입규제완화, 가격규제의 폐지 등을 실시하였으며 금융시장개혁을 통하여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제고하고 무역관련정책의 누명성제고와 국내규제의 국제기준화 추진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1980년대의 기능별 산업정책에 대한 반성으로서 업종별산업정책을 재현하고 재벌규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재벌의 업종별 전문화를 유도하고 여신관리제도를 개선하였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무역의 역할

수출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면 우선 그 나라의 경제적 상황과 위치를 나타내는 잣대인 GNP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수출이 클수록 GNP도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이건 자료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1999년 발표된 주요무역국의 세계경제순위 표를 보면 미국이 17,549억불의 금액으로 무역 1위인 미국이 92,991억불로 GNP도 1위이고, 무역량 2위 독일은 GNP규모 3위, 무역량 3위 일본은 GNP규모 2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99년 당시 한국은 무역량과 GNP모두 13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수출이 국가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 경제의 무역 의존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GNP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65년  21.2%에서 77년 56.7%로 증가하였고, 81년 70.6%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94년부터 다시 확대되어 98년에는 71.2%, 99년에는 65.5%를 기록하였다. 이중 GNP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65년 5.8%에서 77년  27.3%로 증가였고, 87년 35.4%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94년부터 다시 확대되어 98년에는 42.3%, 99년에는 35.7%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 수치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지만 대만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또 수출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를 살펴보면 수출은 직접적으로는 생산 및 소득을 유발하고, 간접적으로는 국내기업에 대한 규모의 경제효과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한다. 수출에 의한 경제 성장율은 70년 3.0%, 80년 1.5%, 90년 0.9%이었으나, 98년 이후 크게 증가하여 99년에는 5.2%를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70년 34.1%, 90년 9.5%이었으나, 99년에는 48.6%로 크게 증가하였다. 1990년대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58%에 기여하였고 실제로 수출이 10% 증가하면 고용이 26만 명 증가하고 1인당 소득 200달라 증가, 외채 95억 달러 상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출은 소득유발효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데 수출은 그 상품을 생산함에 있어 생산 활동에 연관된 노동, 자본, 토지 등 생산요소의 참여로 임금, 이자, 기업이윤, 지대, 임차료등 부가가치 즉, 소득을 실현시킨다. 수출의 소득 유발액은 75년 33억불에서 96년 927억불까지 증가했다가 99년에는 879억불로 다소 감소했다. 하지만 수출의 국내총생산에 대한 기여도는 75년 15.6%, 85년 18.4%, 90년 17.4%, 97년 18.3%, 99년 21.6%로 증가추세에 있다.

  수출의 생산유발효과를 알아보면 수출은 제품생산 공정상의 전․후방 연관 산업뿐만  아니라 운수․보험․창고 등의  부수 산업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쳐 산업전반의 생산 활동을 증대시켰다. 수출의 생산 유발액은 80년  357억불, 90년 1,317억불,  99년 2,831억불로 계속 증가하였고.  수출의 총 산출에 대한 기여도는 80년 23.2% 90년 22.4%, 99년 27.1%를 기록하였다.

  또 수출은 고용과도 관계가 깊다. 수출증대는 생산증대와 더불어 관련 산업의 생산 활동을 직․간접으로 증대시킴으로써 고용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수출의 고용유발인원은  80년 1,985천명에서 94년  3,172천명으로 증가하다가 이후 다소 감소하여 99년에는 2,207천명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따라 수출의 총 취업에  대한 기여도가 최근 다소 낮아지고 있는데, 이는 수출증가에도 불구하고 취업유발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전자 및 전기 등을 수출을 주도하는 데 기인하였다.

  수출은 수입유발효과에도 큰 영향을 준다. 수출에 의한 수입유발액은 수출규모 증가에 따라 80년 64억불, 90년 210억불, 99년 575억불로 증가하였고 수입유발도는 96년까지 감소하다가 이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최근 수년간 교역조건이 악화되었고, 수입유발도가 높은 전기․전자의 수출비중이 확대된 데 기인하였다.

  이 밖에도 눈에 보이거나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제 경쟁을 통한 체질강화, 제품의 다양화와 품질의 고급화, 대량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및 물가의 안정, 외국기업 및 바이어와의 접촉을 통한 국제화라는 부수적 효과들도 우리 경제에 나타난다.

  더군다나 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 IMF 체제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외채가 많다. 이 외채는 거의 무역 적자에서 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우리는 94년부터 4년간 약 455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보았다. 이 적자를 갚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무역 흑자라는 점을 고려 해봤을 때 수출은 외채 상환과도 관련해서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준다.

  이상까지 살펴본 것들을 정리해보면 수출은 국민경제에 경제성장, 고용창출, 기술축적, 국제수지의 개선의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밖에도 생산유발효과로 관련 산업 연쇄 생산증대 소득유발효과로 노동, 자본, 자원 등의 대가 지급, 고용유발효과로 생산증대, 노동증대 등의 영향도 주고 있다.

  다음에서는 한국의 경제성장과정에 있어서의 무역의 역할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1. 긍정적 측면

1)실업의 해소와 고용의 증대

경제개발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60년대 초반 한국은 풍부한 유휴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당시 약 3,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했고, 일자리를 찾고 있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기초교육을 받은 상태였으므로 약간의 적응훈련으로 산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추진한 결과 경제활동인구, 취업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2000년까지 인구는 약1.6배 증가했으나 생산 활동에 참여한 취업자 수는 거의 2.5배로 늘어났다. 즉, 경제활동인구는 1965년 875만 명에서 1996년에는 2,119만 명으로 늘어났고,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811만 명에서 2,076만 명으로 늘어났다. 풍부한 노동력이 공급 측면에서 생산증대에 기여했다면, 이들이 벌어들인 소득증대는 매년 국내시장을 확대시킴으로써 수요 측면에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2)저축의 증대 및 투자재원의 자력화

 저축은 소득 중에서 소비하지 않고 남은 부분을 말하는데, 중요한 투자재원을 형성한다. 재화와 용역의 공급이 부족한 경우 소비수요가 많으면 인플레를 조장하고, 수요가 공급능력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경기침체를 유발하므로 저축은 미덕일 수도 있고 악덕일 수 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산능력이 충분한 선진국에서 경기가 부진한 경우 저축보다 소비가 장려되는 반명 잠재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개도국에서는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투자가 시급하기 때문에 저축이 장려된다.

  그러나 선진국이 저축여력이 높은데 비해 개도국은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하므로 상대적으로 저축여력이 작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아주 낮은 단계에서는 저축률이 낮으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1960년대에 10%대에 불과하던 저축률이 최근 30%대로 높아진 한국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

by 블루밍걸 | 2006/04/14 10:54 | Blooming Trade 과제 | 트랙백 | 덧글(0)
Blooming Trade 과제 (N4) -완성본-
  

2.부정적 측면

1)요소동원에 의한 성장

한국은 경제개발을 착수할 당시 근면성으로 무장되고 일자리를 갈망하는 풍부한 인적자원을 보유했지만, 생산 활동을 위해 그와 결합되는 물적 자본, 관리능력 및 경제제도 등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자본형성이 미흡하고 기업과 산업 활동을 지원하는 법규와 기구가 마련되지 않았으며, 민간부문에서는 기업을 경영할 관리자들이 부족하였다. 한국은 시장경제의 발전을 제약하는 이런 문제들을 정부의 개입으로 해결하였다. 경제개발 초창기부터 도입된 5개년계획과 그에 따른 자원동원으로 처음에는 경공업이 발전하고, 점차 중화학 공업이 뿌리를 내렸으며, 최근에는 첨단산업과 지식집약산업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은 근본적으로 요소투입 중대에 기초한 것이었다, 1960년대에는 농촌지역의 실업자와 과소고용인구를 생산성이 높은 도시 공업부문으로 유인하여 공업화를 달성하였고, 1970년대 이후의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는 내자동원 및 외자도입으로 자본집약적 산업을 진흥시켰다. 정부는 1970년대에 범국가적으로 펼쳐졌던 새마을운동 및 교육훈련의 확충을 통해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경제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끊임없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노동력을 유인하였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기술혁신을 통한 질적 발전보다는 요소투입 증대에 의한 생산력 확충이라는 수량적 접근을 통해서 선진국을 따라잡는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경제개발과정은 정부의 요소동원과 가이드로 짧은 기간 내에 산업역량을 확충했다는 점에서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점진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구미 선진국들과 대비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한국이 전형적인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시간적으로 축약시켜 짧은 기간 내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압축 성장’이라 부른다.

  압축성정과정에서 주도산업도 변화되어 왔는데,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섬유, 가발, 합판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성장을 주도하였고,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는 조선, 전자, 철강, 자동차 등 자본집약적 산업이 성장을 주도하였으며, 1990년대부터는 자본집약산업과 함께 정보통신, PC와부품,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성장을 주도하였다. 이들 산업은 국내생산 및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을 뿐 아니라 주력 수출품으로 등장하여 수출주도 성장을 견인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한국은 점차 고비용사회로 전환되었다. 인적자원이 상대적으로 희소해지면서 노동비용이 상승하였고, 토지의 희소성이 커지면서 인프라의 건설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용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성장보다 분배의 형평성을 강조하는 경제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생산성 향상을 상회하는 속도로 임금이 폭등했고, 땅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사회 간 접자본 건설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물류비가 폭등했다. 노동비용과 물류비 상승, 기업의 차입금 의존관행, 글로벌화에 따른 치열한 경쟁 등이 함께 어우러져 국내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나아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요인이 되었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 정당화될 수 있었던 요소투입 증대에 의한 양적 팽창전략은 이제 가용 유휴자원 소진, 노동 및 토지사용 비용 상승, 투자수익률 하락 등으로 그 효용성이 한계에 이르렀으며, 기술혁신 및 생산성 향상이 주도하는 질적 성장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2)정부주도 경제개발

산업발전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시장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던 경제개발 초기에 엘리트 인적자원이 공공부문에 집중되고 민간부문의 역량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국내 산업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고, 남아도는 노동력을 고용할 역량이 없었으며, 국내 잠재수요를 충족시킬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 단계에서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수립ㆍ시행함으로써 공업화를 달성, 농업중심 경제구조를 공업 및 서비스 중심 구조로 전화시켰다. 인적자원을 제조업 및 도시 서비스부문으로 유인하여 생산과 소득증대를 달성하였으며 선진 경제구조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전되고 민간부문이 성장하면서 경제개발 초창기에 위력을 발휘했던 정부주도 전략은 점차 낭비와 비효율을 수반하는 부적절한 전략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희소한 자원의 동원 및 전략적 배분에 효과적이고 민간부문이 취약한 상황에서 해외시장ㆍ자원ㆍ자본ㆍ기술에 의존하는 외향적 경제운영에 적합했지만 공정경쟁이 강조되고 기업경영, 신규투자, 해외진출 등에서 산업계의 자율성이 요구되는 글로벌경제시대에는 오히려 시장의 힘을 약화시키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으로 작용하였다.

  새로운 글로벌경쟁시대에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국내투자는 물론 외곡인 투자유입을 방해하고 생산원가를 상승시켜 성장을 방해한다. 1970년대 후반의 중화학공업 육성과정에서 본 것처럼 경제 원리를 무시한 개발정책은 자원의 낭비와 불합리한 투자배분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이 모호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부패가 만연하며 정책실패의 결과는 국민경제 전반에 파급된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력 집중, 개발이익 편중, 정격유착, 부동산투기와 한탕자의, 지하경제 그리고 지연ㆍ학연ㆍ혈연이 지배하는 연고주의(nepotism 또는 cronism) 등이 모두 경제에 대한 지나친 정부개입의 산물이다.

  정부의 성장일변도 정책이 경제력 집중 및 개발이익 편중을 초래했고 정부의 특혜를 얻어 내려는 기업과 개인의 형태가 정경유착과 부패, 지하경제의 확산을 유발했으며, 정치논리에 따른 개발전략,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는 막대한 자원낭비를 유발하였다. 정부개입은 국내외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금전적*시간적 거래비용의 상승을 수반하므로 국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이제 한국은 시장기구가 정부의 간섭과 지시를 대신하여 자원배분을 주도해야 할 시대로 접어들었다.


3)수익성보다 규모에 치중한 기업경영

요소투입의 중대를 통한 성장방식은 수익성보다 외형키우기를 중시하는 기업경영을 초래했다. 주주의 권익을 위해 기업가치, 즉 이윤극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시장점유율, 매출의 극대화를 통한 외형키우기를 도모했다. 기업들은 외형확대를 통해 규모면에서 업계 1인자가 되고자 노력했으며, 재벌들도 자산이나 매출규모면에서 상위 순위로 도약하기 위해 끊임없이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재무구조가 불량하면서도 문어발식 확장을 추구했다.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수익성보다 외형을 늘리기 위한 수신고경쟁이 보편화되었고, 정부 각 부처도 기구 확대, 산하기관 늘리기 등을 추진했다. 규모가 큰 기업이나 그룹일수록 정부의 신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쉬웠으며,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하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며 정치권 및 관료집단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이런 관행은 전통적으로 규모와 서열을 중시하는 국민의식, 규모 확대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파산 또는 몰락 가능성을 줄이려는 기업의 전략을 반영한다. 공공부문의 기구 확대는 새로운 일자리마련 및 승진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이를 추구했으며, 기업과 재벌들도 경기침체나 변덕스런 시장수요에 대한 일종의 보험수단으로 업종다각화를 추진하였다. 연구기관들은 경제위기 이전부터 이런 관행을 몰고 올 파장을 경고하였으며, 국제적 컨설팅업체인 맥킨지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정을 ‘가치파괴의 연속’이라 꼬집었다.

  외형키우기 관행은 결국 대기업그룹과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하여 외환위기를 유발시켰으며, 기업과 은행들은 혹독한 위기경험을 통해 방만한 기업경영, 부실을 초래하는 외형키우기 대신에 생산성 향상을 통한 내실 있는 경영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외환위기는 경제주체들의 의식과 행태를 변화시키고 공공ㆍ금융ㆍ기업부문의 개혁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유산을 남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어려 카드업체들이 과열경쟁과 카드남발로 부실화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뿌리 깊은 외형키우기와 이로 인한 기업부실화 관행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4)개발철학의 부재와 모방성장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에 정통성을 결여한 정권이 집권과정을 정당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경제개발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짧은 기간에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이룩했지만, 장기적 비전보다는 정치적 판단과 인기 위주의 정책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일본의 성장과정을 모방하는 전략으로 일관하였다. 제도(system)보다는 인치가 자원배분을 지배하고, 공업입지와 개발프로젝트를 선정하는 등의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정하였고, 이 과정에서 학연ㆍ지연ㆍ혈연이 개입하는 연고주의(cronism)가 만연했다.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선진제도와 기술을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지만 일본의 정책과 제도를 그대로 답습한 사례가 많다. 유사한 자원부존 상황, 상대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이기 쉬운 지리적ㆍ문화적 조건 때문에 일본의 제도와 기구, 정책, 기술 등을 모방함으로써 초창기 고도성장에 기여한 면도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국내외 시장에서 일본과 힘든 경쟁을 벌이고 일본과의 무역에서는 만성적 적자를 보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1960, 1970년대에는 한국이 국내의 농업과 서비스산업을 보호하고 철강, 조선,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반도체산업 등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대부분의 산업정책 수단들은 이전에 일본에서 도입하여 정착시킨 것들이었다.

  이러한 모방전략은 시행착오에 따른 낭비를 줄이고 짧은 시간에 산업능력을 확충하며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 유리했지만, 창의성이 결여되고 자체 기술개발을 지연시켜 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모방전략은 수입대체산업과 수출산업을 육성, 짧은 시간 내에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 유용하지만 이들과 경쟁하거나 이들을 추월하는 데는 한계를 지닌다. 1990년대에 들어와 국내기업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부실이 늘어나며 국제경쟁력이 하락한 것은 바로 모방성장의 한계를 입증하는 것이며, 요소투입 증대에 의한 성장방식을 자체 기술개발에 의한 생산성 향상방식으로 쉽사리 전환하지 못한 것도 모방전략에 너무 익숙해 온 관행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창출, 국제시장에서 고유영역확보, 국제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서는 자체 기술과 함께 우리현실에 맞는 독창적 성장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이 외에도 대기업과 재벌에 의존한 경제성장, 정경유착, 국민의식 쇠퇴 또한 부정적 영향으로 볼 수 있다.

by 블루밍걸 | 2006/04/14 10:53 | Blooming Trade 과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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